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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그런 생각을. 합니다..


문화란 방종과 방관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관심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아침부터 언제든 비님이 오실 것 같은 날씨네요..


우산 챙기고 외출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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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눈물만 흐릅니다..

노무현 대통령님이 계셔서 행복했었습니다..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셔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지켜주시길..

삼가 고인의 명복의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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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갈량의 성은 갈씨였다.

[제갈량]의 성씨에 대해 정사는 아무런 의문점을 제기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제갈양전>에는 "제갈양의 자는 공명이고 낭야군 양도 사람으로 한의 사령교위 제갈풍의 후예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배송지는 정사에 주를 달면서 제갈양의 본래성은 `제갈` 이 아니라 `갈` 이라고 했다. 그 주에서는 응소의 「풍속통」, 위요의 「오서」를 인용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제갈양의 일족은 원래 갈 씨 성으로 진말에 진승과 오광의 봉기에 가담한 장군인 갈영의 자손이다. 갈영은 전공을 올렸지만 진승에게 살해되었기 때문에, 한의 문제 때 그 공적을 인정해 자손을 제현후(제현은 낭야군에 속한다)에 봉했다. 그 후 여러 대가 지나서 그들의 일족이 제현에서 양도로 옮겨갔는데, 양도에서 원래부터 갈 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둘을 구별하기 위해 양도의 사람들은 그들을 제갈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그 후 언제부터인가 두 글자인 제갈이 통용되게 되었다.
이 설에 대해서 중국 성씨의 뿌리를 고찰하는 입장에서 이의가 제기되었는데, `갈`이라는 성은 상고시대 중원에 있었던 갈천 씨라는 부족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들은 평화를 즐기고 생업에 힘쓰며, 춤과 노래를 즐기는 부족이었다. 유명한 `갈천 씨의 가무`가 여기에서 생겨났다. 갈천 씨의 자손이 바로 갈 씨이다. 하 왕조에 이르러 백익의 자손이 제후가 되어 갈백(갈은 하남성 영릉현의 동북쪽)에 봉해졌다. 갈백의 자손도 갈 씨라 칭했다.

제갈이라는 성씨는 백익의 후예인 갈백의 나라가 멸망한 후, 갈씨의 일족이 산동의 여러 성에 옮겨 산 것에서 비롯되었다. 진말에 진승이 봉기했을 때 갈영은 여러 번 공적을 세웠는데, 중상모략을 당해 진승에게 살해되고 말았다. 그 후 한의 문제 때 갈양의 자손을 제현후에 봉한 이래로 그의 자손을 제갈씨라고 칭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제갈이라는 성은 제현에서 양도로 옮긴 후에 그곳의 다른 갈 씨와 구별하기 위해 고친 것이 아니라, 양도에 옮겨 살기전부터 봉지와 관련해 고쳤다는 것.

제갈량은 성은 제갈(諸葛), 이름은 양(亮), 자는 공명(孔明)으로 제갈씨는 본래 갈씨였는데 그의 조상대에서 제현에 뿌리를 두고 살다가 다른 지방으로 이사를 하며 제현에서 온 갈씨라 성을 '제갈'로 바꾸게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제갈씨는 흔한 성이 아니었다. 제갈량의 제갈가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그의 8대조 위인 '제갈풍(豊)'에서 부터인데 제갈풍은 오늘로 따지자면 검찰청장의 일을 하였으며 성품이 곧고 올바른 고지식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 제갈풍은 전한 말에 사예교위(司隸校尉)라는 벼슬을 지냈는데, 오늘날의 경찰청장에 해당하는 직위이다. 당연히 사람들의 두려움을 사는 존재였는데, 성품까지 강직하다보니 그 명성이 낙양성 안에 드높았다. 그 무렵, 황제의 외척으로 시중 벼슬을 하고 있는 허장(許章)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뒷배경을 믿고 국정을 마구 휘둘러댔다. 모두들 그를 꺼려하고 마주치기를 피하는 중에, 어느 날 제갈풍이 순찰 도중 도성 한가운데서 그와 마주쳤다.제갈풍은 기회다 싶어 허장의 수레 앞을 가로막았다.
 
―황제의 명령으로 당신을 체포하겠소. 당장 수레에서 내려 포박을 받으시오ㅡ 제갈풍의 호통소리에 기절초풍한 허장은 허둥지둥 수레를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제갈풍이 쫓아갔지만, 허장은 쥐새끼처럼 거리를 빠져나가 궁궐 안으로 달아나버렸다. 궁궐 안은 사예교위의 관할 밖이었다. 그러나 제갈풍은 포기하지 않고 즉시 관청으로 돌아와 허장을 탄핵하는 글을 써서 황제에게 올렸다.

한편 궁궐 안으로 도망쳐 들어간 허장은 그 길로 황제의 처소로 가서 눈물을 뿌리며 애원했다. ―폐하, 사예교위 제갈풍이 남이 모함하는 말만 듣고 신을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그 때 제갈풍이 올린 허장 탄핵상서가 황제에게 전달되었다. 이미 허장의 말을 그대로 믿어버린 황제는 오히려 제갈풍의 관직을 삭탈하고 서인으로 강등시켜버렸다.

이에 제갈풍은 나라의 어지러운 꼴을 한탄하며 미련 없이 고향인 양도현으로 내려와 농사를 지으며 조용히 지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제갈씨는 일약 청렴강직의 대명사가 되었고, 대대로 벼슬이 없으면서도 명문가의 명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제갈량은 형 근과 남동생 균, 여동생 영이 있다.

제갈량의 아버지 '제갈규'는 나라의 벼슬을 하기도 하였는데, 제갈량이 어릴적에 그의 어머니를 잃은 후 슬퍼하다가 새아내를 맞아 아이들을 돌보려 하였으나 양은 새엄마를 싫어했으며 규는 얼마있지않아 죽어 제갈량은 고아신세가 되어 숙부인 '제갈현'의 밑에서 자랐다. 사실상 제갈량을 키운 사람은 숙부인 '제갈현'이었다.

제갈현을 따라 양은 형주에서 동생인 균과 영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살았고 형인 균은 동오로 건너가 손권의 밑에서 일을 하였다. 어린시절을 형주에서 농사를 지으며 보냈던 제갈량은 '공명'이란 자를 받았으며 그곳에서 사마휘 밑에서 학문을 배웠고 유명학자들과 친구관계로 지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렇게 형주에서 그는 자신의 '초려'에서 동생과 극히 평범하게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인이 된 제갈량은 키가 8척(요즘으로 따지자면 한183cm정도)이나 되었으며 양보음이란 시를 노래로 부르는 것을 즐겼으며 음악을 좋아해 거문고를 잘 탔다고 한다.

그는 형주에서 알아주는 집한이던 황가의 '황승언'의 딸과 결혼하였는데 그녀의 이름이 황용이라고도 하고 월영이라고 하기도 하나 확실한 이름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황용은 키가 요즘으로 따지자면 170cm가 넘을 정도로 컸으며 매우 추녀였다는 소문도 있고 인도여자나 서양의 백인이었다는 말이 있을정도로 그녀의 외모는 정확하지 않는데 요즘으로 따지자면 인도나 백인이 나오는 것으로 보면 미인이었을 거라는 개인적인 생각.

그녀는 매우 총명해 제갈량의 일을 도왔다고 한다. 하지만, 결혼후 계속 아이를 낳지 못했다. 그러나 공명이 48세되던 해에 외아들인 '제갈첨'을 낳았다. 아내가 아이를 낳지 못했던 때에 공명은 형의 아들인 교를 양자로 삼았었다. 제갈량에게 첩이 있었다는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는 아내를 매우 신뢰했던 것 같다.

초려에 살던 공명은 유비를 만나 그를 도와 세상일에 나섰고, 그의 밑에서 뛰어난 정치적 능력을 발휘했다. 정사 삼국지를 보면 그의 정치적 능력은 따라올 자가 없었던 천재였다고 한다. 그러나 워낙 유비의 세력이 약했기에 제갈량은 오장원에서 병으로 죽었고 그의 어린 아들이던 제갈첨도 후에 전쟁터에서 전사했고 손자도 어린나이에 전쟁터에서 전사했다고 전해진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선 제갈량을 신처럼 묘사하기도 하는 등 친유비적 모습을 많이 보였고, 그의 전쟁터에서의 지략가적 능력을 크게 묘사했다. 하지만, 실제의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엔 제갈량은 전쟁터보단 내정에서의 정치적능력이 뛰어났다고 하고, 현재 중국에는 그의 사당이 있다.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갈(葛)씨에 대해(갈욱君의 홈피에서 가져옴)

성씨 '갈(葛)'에 대해서 우리 가문의 시조는 한나라 헌제때 태산군의 승(丞)을 지내시고 휘를 규(珪),자를 군공(君貢)으로 쓰신 분이시며, 이분의 아드님이 바로 공명선생(公明先生)이십니다. 봉작이 무향후인 까닭으로 흔히 제갈무후로 통합니다. 원래의 본관은 남양(南陽)이니 이는 무후선조께서 유비를 만나 세상으로 나오시기전 와룡(臥龍)으로 승천을 기다리며 10년간 거하시던 중국 형주의 남양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무후선조의 증손이시며 세계로는 5세이신 휘 충(忠)께서 의로서는 위나라땅에 살수없다 하시고 신라로 동도(東渡)하시니 이후 우리 선조들께서는 우리나라와 중국을 오가며 잠영(潛影)을 이어가게 됩니다.

고려 현종때에 이르러 제갈(諸葛)씨는 {제}씨와 {갈}씨로 분종하게 되니 그 연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고려 현종때에 이르러 세계로는 32세며 휘를 한(漢)으로 쓰신 분이 계셨으니 은거하며 학문에 힘써 성현의 법과 제도를 몸소 행하시었습니다. 이에 현종은 공의 명망을 전해듣고 예로써 내직으로 초빙하였으나 공께서 삼가 사양하시며 끝내 벼슬에 나가지 않으니 현종은 이를 더욱 존숭하여 공의 두 아들을 각기 군(君)으로 봉하여 토지를 내리게 됩니다. 장자(長者)인 홍(泓)은 제(諸)씨로 하여 낭야군(郎耶君)으로 봉하고 차자(次子)인 형(瀅)은 남양군(南陽君)으로 봉하여 사성(賜性)하니 제갈 양자를 제와 갈씨로 분성한 까닭은 봉지를 구분하기 위함이며, 낭야와 남양은 무후선조께서 일찌기 사시던 지명에서 연유한 바입니다. 제씨와 갈씨로 분성된 이후에도 양가의 유대는 돈독하여 어느 한쪽이 무자(無子)면 상호 출계(出系)하여 대를 이으니 소위 성은 둘이나 그 근본이 하나인 까닭입니다.

갈씨의 중시조는 휘를 성룡(成龍), 자를 천종(天宗), 호를 우은(愚隱)으로 쓰신 분으로 고려조에 우림대장을 지냈으며, 조선조에는 보국숭록대부의 품계를 추증받았습니다. 일찌기 공께서는 태조 이성계를 도와 황산대첩에서 왜구를 무찌르는 등 많은 공을 세웠으나 역성혁명에 참여하지 않으시고 스스로 호를 우은이라 칭하고 두문동에 은거하니 태조는 개국후 모두 세번에 걸쳐 공의 입조를 청하나 끝내 사양하시다 홍무 정축년 팔월 초아흐레 술시에 영면하시니 나라에서는 충일공(忠一公)이란 시호를 내려 충절을 기렸습니다. 이후 태조는 교지를 내려 공의 네아들을 각기 군으로 봉하니 장자인 휘 원께서는 성주군(星州郡)으로 지금의 대구시 화원일대의 오방(五方)을 식읍으로 하사받았으며 세종조에는 대구부원군(大邱府院君)으로 봉해져 상방의 지역을 추가로 하사받았다. 이로써 화원일대는 우리 일족이 집성촌을 이루어 거주하게 되니 후손들은 이후 화원과 남양을 본관으로 두루 쓰게 됩니다.

갈씨의 파계는 충의공파,진사공파, 금위공파등 3개의 파가 있으니 충의공(忠毅公)파의 파조는 임란의 공훈으로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던 휘 호(灝) 선조이시며, 진사공파의 파조는 성균관 제일진사였던 휘 천일(天一) 선조가, 그리고 금위공파의 파조는 중종조 금위대장을 지내신 휘 공뇌(孔뇌)선조가 되십니다.
현재 우리 종가(宗家)는 대구시 달성군에 있으며 매년 음력 삼월과 시월에 사당과 충일공의 산소에서 시제를 올리고 있습니다. 전국적으로는 대구의 화원, 전남 곡성군 옥과, 강원의 춘천에 집성하여 갈씨들이 분포하여 있습니다. 지금은 많은 씨족들이 제갈씨로 복성회귀하여 있으니 이들 대부분은 갈씨에서 회귀한 것이라 이해하면 무리가 없겠습니다.

((제갈씨 측의 이야기로는 1899년(광무 3) 조정의 판결을 얻어 제씨와 갈씨가 제갈씨로 환원 하였는데, 당시 일부는 환원하고 일부는 그대로 남아 오늘날 제갈·제·갈 3성이 존재하게 되었다고 한다.))

갈씨는 성이 워낙 희성이라 타성으로부터 종종 오해를 받으나 이는 오로지 무지와 몽매함에 말미암은 것입니다. 또한 현재 발간되어 있는 족보관련서적들에서 갈씨에 대한 기술이 허술한 것은 인구가 적어 조사나 고증을 정확히 하지 않은 이유도 있거니와 공공도서관 또는 관련기관등에 우리가문의 대동보를 널리 보급하지 않은 우리 종문의 과오도 없지않다 하겠습니다.

세계 휘 벼슬
 
1세 규 - 한나라 태산군 승
2세 량 - 촉한 승상 무향후
3세 첨 - 촉한 군사장군 서향후
5세 충 - 신라로 동도
6세 경 - 신라 기림왕조 아보
7세 면구 - 신라 흘해왕조 천문록위
9세 걸 - 입중국, 요동후
13세 덕 - 운수공, 당태종의 스승
18세 현 - 당나라 한림학사
20세 석 - 당나라 서하태수
21세 공순 - 당나라 닥종조 간의대부, 신라로 동도
22세 시 - 신라조 호부시랑
29세 여문 - 고려 태조조 비서승
30세 명 - 고려 태조조 상장군 벽상공신
38세 춘 - 고려 인종조 신도태수
38세 위 - 고려 명종조 찬례교위
41세 문유 - 고려 고종조 구산부원군
42세 현 - 고려 충숙왕조 사마, 화산부원군
43세 인규 - 고려 충정왕조 어사
44세 성룡 - 고려 우림대장, 조선 태조 증 복국숭록대부
45세 원 - 조선 태조조 성주군, 세종조 대구부원군
48세 공뇌 - 조선 중종조 금위대장(금위공파)-지계
49세 호 - 조선 선조조 의병장, 증병조판서(충의공파)-종계
51세 천일 - 조선 성균관 진사(진사공파)-지계
52세 자경 - 효종조 병조판서.



그외에 갈씨에 관한 설화...(같은 뿌리의 갈씨인지는 알 수가 없다)

술독에 빠진 뱀


옛날 평안도 맹산에 갈(葛)씨의 한 족속이 살고 있었다. 이 갈씨는 일찍히 갈가섬이라고 하는 섬을 개간하여 그 곳에서 잘 살고 있었다. 어느해 갈씨 일족의 한 집에서 잔치를 하게 되었다. 그래서 갈씨는 그때 쓰려고 갈 밭 속에다 술을 해 넣었다. 그리고 며칠 뒤에 가서 보니 그 술독 안에 뱀 한 마리가 빠져 죽어 있었다. 갈씨는 이거 큰일났다고 생각하면서 그냥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이윽고 잔칫날이 되자 어디서 왔는지 병들은 거지 한 사람이 와서 잔치 술 한 잔 먹여 달라고 떼를 썼다. 주인 갈씨는 저기 갈밭 속에 들어가면 술독이 있으니 그 술을 먹어라 하고 가리켜 주었다. 거지는 갈밭 속으로 들어가 보니 한 곳에 큰 독이 묻어 있는데 술 냄새가 코를 찔렀다. 거지는 배도 고프고 술 생각도 간절하고 하여 술독가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하여 어디 한 잔 하자꾸나! 하고 술독 뚜껑을 열고 들여다 보니 뱀 한마리가 죽어 있었다.

거지는 뱀이 빠져 죽은 술을 먹을 수야 있나, 하고는 일어서서 도로 잔칫집으로 갔다. 그리고 술독에 뱀이 빠져 있으니 먹을 수가 없다고 하자, 주인 갈씨는 도리어 화를 내며, "뭐? 너희들을 위하여 일부러 갈밭 속에다 저렇게 술을 해 넣어 두었는데 그것은 먹지 않고 뭐가 어쨌다고?"하면서 화를 내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오랫동안 병든 몸을 끌고 다니며 고생하던 거지는 배도 고프고 기운도 없고 하여 답답한 나머지 그 갈밭으로 도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혼자말로 '내 병도 이토록 오랫동안 낫지를 않고 또 몸도 이렇게 쇠약하니 다시 살아날 것 같지 않구나. 어디 독사의 술이나 실컷 마시고 한숨에 죽어 버리자.'하고는 꿀떡꿀떡 술을 마셔 버렸다. 그리고 마침내 술이 취하여 그냥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고 말았다.

이튿날 아침 갈씨가 그 곳으로 가보니까 거지는 아무것도 모르고 잠을 자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눈을 떴는데, 혈색도 좋아지고 전날 보기와는 전혀 딴판의 실로 건강한 몸이 되어 있었다. 반면에 전날 아무렇지도 않던 갈씨는 그날부터 병을 얻어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심해지고 또 집안 사람들에게도 병이 전염이 되어 갈씨 일족은 쇠멸하여 갔다고 한다.

그 뒤 거지가 그 곳에서 자리를 잡고 살자, 하는 일이 다 잘되어서 이전의 갈씨보다 잘 살았다고 하는데, 거지의 성이 박(朴)씨였다. 박씨는 지금도 맹산의 큰 성씨 넷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해설= 이 이야기는 뱀이 들어간 술의 효능이 뛰어남을 보여주면서 뱀의 재물신적 속성을 동시에 드러낸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특히 오랫동안 병에 고생했던 거지가 뱀술로 인해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고 한 것은 뱀의 효능이 남다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 다른 점에서는 이 뱀의 존재가 업의 형태로도 이야기될 수 있다. 술독에 빠진 뱀은 갈씨 집안의 업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한 뱀이 빠진 술을 먹은 박씨는 업을 먹은 꼴이 되어 업이 들어온 것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갈씨의 재물이 박씨 집안으로 유입된 것이다. 다시 말한다면 뱀이 술독에 빠진 것은 갈씨 집안의 업이 빠져나간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 뱀이 담긴 술을 먹은 박씨에게 업이 들어왔다는 식으로 설명될 수 있다. 그런데 뱀이 빠진 술을 잔치에 사용하지 않고 병든 거지에게 술을 준것으로 볼때, 이 설화가 형성될 당시에는 뱀술이 정력제나 치료제로 사용된 것 같지는 않다. 따라서 이야기의 내용으로 본다면 뱀의 효능은 이후부터 인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이야기가 설화라는 점에서 뱀은 업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갈근葛根(칡)의 명칭유래


어느 시골 한 노인이 산에서 약초를 캐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여러가지 약초를 캐어 팔기도 하고 아픈 사람을 치료해주기도 하였는데, 어느날 산속으로 한 소년이 숨어들어 살려달라고 애원했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갈씨 집안의 외아들 인데 아버지가 반역자로 모함을 받아 집안이 몰살 위기에 처해 대라도 이을 생각으로 외아들을 산속으로 피신시킨 것이었습니다.

갈씨 가문은 그 지방 사람이면 다 아는 충신 집안이었습니다.그래서 자기만 아는 동굴에다 소년을 피신시키고 음식을 날라다주며 보살폈습니다. 세월이 흘러 세상이 조용해지자 노인은 소년에게 이제 집으로 돌아갈 것을 권하였지만, 소년은 "집으로 돌아가도 혈육도 재산도 없으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게 해달라"고 애원해 두 사람은 같이 살게 됐습니다.

노인이 세상을 떠나자 장성한 소년은 노인이 하던 일을 계속이어나가던 어느날 열과 갈증이 나고 설사가 심한 환자가 찾아와 고통을 호소하였고 그는 노인이 하던대로 산에 올라가 약초를 캐어 그 약초를 환자에게 먹였더니 화자는 완쾌되었습니다. 환자는 그에게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그 약초의 이름을 물었습니다.

그는 한참 생각끝에 '내가 갈씨 가문의 뿌리를 지키기 위해 산속에 남아 캐냈으니 [갈근]이라고 하자'며 임시변통으로 명칭을 둘러댔습니다. 그래서 칡뿌리를 [갈근]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칡은 콩 과의 여러해살이 덩굴나무입니다. 우리나라 각지의 산이나 골짜기 어디든지 잘 자라며 보라색 꽃이 은은하며, 뿌리에는 녹말성분이 많아 떡이나 국수를 만들어 먹기도 하고, 과거에는 줄기에서 섬유질을 뽑아 베를 짜기도 했습니다.

맛이 달며 독이 없고 풍한으로 머리가 아픈 것을 낫게 하며,땀구멍을 열어 땀을 나게 하며 술독을 풀어줍니다. 진약을 생기게 하고 갈증을 멎게 하며 술로 생긴 병이나 갈증에는 아주 좋고, 입맛을 돋우고 소화를 도우며 가슴의 열을 내려줍니다.

**위의 글들은 인터넷 네이버 검색으로 찾은 사이트에 올라있던 글을 제가 임의로 모아 놓은 글들입니다.....출처가 중복되고 원래 저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아 일일이 출처를 밝히지 않은 점 양해바랍니다. 원저자님들께는 좋은 지식에 감사드립니다. 

출처 : [기타] 네이버 검색 사이트중에서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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